ㅇ 언제 : 2018.4.8(일) 10:00 ~ 12:30 / 성북구청 주관
ㅇ 어디 : 길상사 - 독일대사관저앞- 정법사 - 우리옛돌 박물관 - 콜롬비아 대사관저 앞 - 덴마크 대사관저 앞 -
필리핀 대사관저 앞 - 남아공 대사관저 앞 - 이라크 대사관저 앞 - 일본대사관 앞 - 삼청각 -
성북천 발원지 - 삼청터널앞 - 우정의 공원
성북동 길상사에서 10시에 집결하여 해설사님 인솔하에 성북동 문화탐방을 시작하다
서울 성북동 중턱에 위치한 길상사는 예전 대원각 자리에 세워진 사찰로,
대원각 주인이였던 길상화 김영한님에게 당시 시가 1000억원이 넘던 대지와 건물을 시주 받아
1997년에 개원하였다.
역사는 짧지만 서울 도심권에 위치하여 내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들이
쉽게 들러볼 수 있는 곳이며, 사찰체험, 불도체험, 수련회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도심문화공간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길상사에는 대중들의 정진 수행공간인 ‘길상선원’과 ‘침묵의 집’이 있다.
길상선원은 일반인들을 위한 상설시민선방으로 방부가 허락된 사람들만 이용이 가능하며,
침묵의 집은 참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명상 등을 자유롭게,
개인적으로 정진할 수 있는 공간으로 누구나 이용이 가능하다.
무소유, 영혼의 모음, 말과 침묵, 물소리바람소리, 산에는 꽃이 피네, 오두막 편지 등을 저술하신
법정스님이 계신 곳으로도 유명하다.
파리에 길상사 분원이 있다.
또한 1997년 세워진 길상사는 역사는 짧지만 개원법회가 있던 날,
김수환 추기경이 개원 축사를 하였고,
2005년 5월 15일 부처님 오신날에는 김수환 추기경과 수녀님들을 초대하여
‘길상음악회’를 통해 불교와 천주교의 종교를 뛰어넘은 만남을 갖기도 하였다.
또한 천주교 신자인 최종태 교수가 직접 조각한 관세음보살상과
기독교 신자인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이 기증한 7층 석탑을 보유하고 있어
종교 화합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길상 7층 보탑이다
2000년 4월 천주교신자인 조각가 최종태씨가 제작하여
봉안한 관세음보살상으로 성모마리아상과 비슷하다
범종각이다. 원래 공덕주 길상화님이 단독 시주해 봉안되었으나
2009년 9월 여러 불자들의 동참하여 다시 조성되었다고 한다
송월각은 스님들의 개인적인 처소라고 한다
길상선원은 좌선을 할 수 있는 방이라고 한다
진영각은 법정스님의 진영을 모시고 법정스님의 저서와 유품을 전시한 전각이다
진영각에 들어가서 우측편에 법정스님의 유골이 묻혀있다
진영각 방안에 법정스님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진영각 좌측에 무소유 의자가 있다.
아무 욕심도 부리지 않는 너무 소박한 의자이다.
현재의 우리 인간들이 꼭 새겨야 할 의자라고 생각한다
1000억원이 넘는 대원각을 시주한 길상화 김영한님(1916~1999)의 사당이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가 창건되었다
정말 길상화 보살님은 대단한 분이시고
재물에 탐하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분인것 같다.
극락전은 길상사의 본법당이라고 한다
길상사를 전부 둘러보고 나와서 우측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가다보니 독일대사관저가 나온다.
독일 대사관저가 이곳 성북동에 제일먼저 왔다고 한다
조금 올라가다 보니 정법사가 나온다
예전에는 복전암(福田庵)이라 불리던 작은 암자였다.
1960년 서울 가회동에 있던 건봉사(乾鳳寺)의 포교당을 옮겨오며
대웅전을 세우고 정법사라 이름 붙였다.
2004년 중건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고,
지하에는 영구위패를 모시는 극락전이 있다.
미륵신앙을 중히 여기는 사찰임을 잘 드러내주는 석조미륵불입상은 1975년 조성되었다.
사천왕문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범종루와 산신각, 3채의 양옥식 요사가 있다.
정법사내 아름다운 꽃을 담아보다
정법사에서 나와 우측으로 올라가다 보면 우리 옛돌 박물관이 있다
옛돌 박물관내에 있는 돌을 찍어보다
옛돌 박물관에서 나오다 보니 콜롬비아 대사관저가 보인다
이어서 덴마크 대사관저
덴마크 대사관저의 아름다운 소나무를 담아보다
필리핀 대사관저이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사관저이다
이라크 대사관저이다
이곳도 전에는 외국 대사관저였다고 한다.
그리고 전직 대통령중 한분께서 대통령 되시기 전에 잠시 사셨던 곳이기도 하단다
변종하 미술관이다
변종하선생은 1926년 경상북도 대구에서 출생하였다.
시적인 정서의 한국적인 이미지 결합을 추구해온 화가로 평가된다.
8.15광복 직전 만주에 있는 신경미술원에서 공부하였고 8.15광복후에는
귀국하여 대한민국미술전람회에서 4~7회 수상하였다.
특히 1955년에는 부통령상을 수상하였으며,
홍익대학교, 수도여자사범대학, 서울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프랑스에 유학하면서 재료에 대해
완벽을 추구하는 러시아 화가들에게 큰 감명을 받았으며,
프랑스 미술비평가이며 시인인 르네 드뤼앵(René Druin)을 만나
작품세계에 큰 전환을 가져왔다.
그후 런던의 쿠퍼 화랑, 파리 시립미술관 등에 초대작가로 활동하였다.
당시 작품으로 일그러진 인물상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우화》 《돈 키호테》 시리즈가 있다.
1975년 현대화랑에서 전시회를 열고 《어떤 탄생》이라는 주제로
민화·야생초. 십장생등과 새를 소재로 한 작품을 시리즈로 발표하였다.
요철 위에 마포를 씌우고 색을 칠하는 새로운 기법을 시도하였으며,
한국적 이미지를 새롭게 탐구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 밖에 《감자꽃과 태초의 새》 등이 있다.
1987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에도 작품활동을 계속해 오다가 2000년 7월 29일 사망하였다
변종하미술관 돌담이 아름답다
삼청각정문이다
1972년 건립된 1970년~1980년 요정정치의 산실로 대표되던 곳이다.
여야 고위정치인의 회동과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장소로 이용하였던 곳으로제3공화국 유신시절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는 손님이 줄어들어 1990년대 중반 이름을 예향으로 바꾸고
일반음식점으로 전환하였으나 경영난으로 1999년 12월에 문을 닫았다.
1999년 말 건물과 부지를 인수한 화엄건설(주)이 고급빌라를 짓기 위해
관할 성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하였으나 문화재 보존여부에 대한
판단문제로 건축허가 결정이 유보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 5월 22일 서울특별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도시계획 시설상 문화시설로 지정하였으며,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 열었다.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고 있다.
삼청각에서 바라본 숙정문
편운정 쉼터이다
천추전이다
편운정 쉼터에서 삼청각 정문쪽으로 내려가고 있다
삼청각에서 나와서 숙정문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다
이곳이 삼청각 뒷편에 있는 성북천 발원지이다.
삼청각에서는 담이 있어서 돌아서 이곳까지 올라왔다
하산하면서 아름단운 꽃들을 담아본다
어느 집 앞에 "익청로"라고 새겨진 돌이 있다.
백숙집을 담아보다.
몇번 가보았는데 오늘도 보니 줄을 서있는것 같다. 성북동에는 맛집등이 많이 있는것 같다
성북동에 잇는 각 국 대사관저들이다.
경관이 수려하고 조용하고 공기가 좋아서 살기 참 좋은곳인것 같다.
둘러보니 너무 좋은 집들이 너무 많다. 아마 평범한 사람들은 아닌듯~
우정의 공원.
이곳에서 해산하고 나는 슬슬 구경하면서 한성대역까지 걸어 가면서 아름다운 꽃들을 산진에 담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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