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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Talk] 외상도, 공짜 배달도 되는 ‘코로나 청정시장’… “대형마트보다 훨씬 낫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재래시장을 가다’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깨비시장 상인들이 13일 고객에게 인사하고 있다. 시장 상인회는 ‘주민이 주인공인 방 학동 도깨비시장’이라는 슬로건을 내거는 등 지역 상생 모델로 활로를 찾았다. 코로나 위기에도 작년 시장 매출은 2019년 대비 24% 올랐다. /이태경 기자>

12일 오후 5시 서울 도봉구 방학동 도깨비시장은 저녁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다. 코로나 확산 속에 강추위와 눈까지 내려 길이 미끄러운데도 지역 주민들은 장바구니 들고 도깨비시장으로 향했다. 방학 2동에 사는 주부 박지향(56)씨는 “여기는 코로나 청정시장”이라며 “상인과 동네 사람들이 함께 일주일 내내, 하루 서너 번씩 소독한다”고 했다. 주부 이미애(51)씨는 “단골은 외상도 되고 공짜 배달도 해주고 대형마트보다 훨씬 낫다”고 했다.

하지만 2년 전만 해도 도깨비시장의 분위기는 지금과 딴판이었다. 동해야채 주인 윤종순(67)씨는 “하루에 몇 번씩 손님과 시장 상인하고 싸움이 났고, 손님이 적으니 장사가 안 돼 상인들은 울상이었다”며 “지금은 천지개벽했다”고 했다. 지난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도깨비시장 주인은 주민”

방학2동 통장협의회 김경희(61) 회장은 “2019년 이전에는 가게에 가격 표시가 없었고, 손님들이 물건값 물어보면 상인들이 신경질을 내고 대꾸도 안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폭 4m 정도의 시장 통로는 상인들이 물건을 경쟁적으로 진열한 탓에 통행이 어려울 정도로 비좁아졌다. 신용카드 결제는커녕 지역사랑·온누리상품권을 받지 않는 가게도 많았다. 손님들이 인근 대형마트로 발길을 돌리면서 시장은 갈수록 썰렁해졌다.

시장 상인회는 “이대로 가다간 다 망한다”며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박광근(75) 도깨비시장 육성사업단장은 “주민과 상인 사이에 공동체 의식이 전혀 없었다”며 “서로 신뢰를 회복하는 게 급했다”고 했다. 상인회는 우선 ‘주·주·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주민이 주인공인 방학동 도깨비시장’이란 뜻이다. 지역 주민자치회·통장협의회 등을 찾아 다니며 “시장을 한 번 살려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그 첫 결실이 2019년 10월 시장 입구에서 열린 ‘모모모(모두 모두 모여 하나되는) 가을축제’였다. 원래는 도깨비시장과 상관없는 지역 행사였는데, 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이 한 데 뭉쳐 처음 열리게 됐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111m 김밥 만들기였다. 시장 입구에서부터 주민센터 방향으로 테이블을 일렬로 늘어 세운 뒤 상인과 주민 1000여명이 한데 섞여 어른 팔뚝 굵기의 길이 111m 짜리 김밥을 말았다. 재료는 시장 상인회에서 제공했다. 윤윤숙(61) 당시 주민자치회장은 “서로 등지고 있던 주민과 상인이 마주 보며 김밥 같이 만들고 나눠 먹으니까 금방 친해졌다”고 했다. 주민·상인 합동으로 이웃돕기에도 나섰다. 추석에 시장 상인들이 사랑의 도시락을 만들면 통장 등 주민들이 지역 내 어르신에게 배달하는 식이다.

 

<2019년 10월 방학동 도깨비시장 상인과 지역 주민이 함께 '모모모(모두 모두 모여 하나되는) 가을축제'를 열었다. 사진은 상인과 주민 1000여명이 길이 111m 김밥을 만드는 모습. /방학동 도깨비시장>

◇백화점 인사로 손님 대접

지난 13일 오전 11시 도깨비시장에는 동요 ‘도깨비나라’를 개사한 로고송이 울려 퍼졌다.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시장, 상품 좋고 가격 좋은 도깨비시장…”. 이후 스피커에서 “인사 연습을 하겠습니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장사 개시를 준비하던 상인들이 매장 앞에 나와 양쪽으로 늘어서더니 안내 방송에 따라 큰 소리로 외쳤다. “어서 오십시오” “네, 잘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또 오십시오!” 상인들은 인사를 할 때마다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이런 인사 연습은 2019년 12월부터 시작됐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상인들의 캠페인이었다. 감창희(52) 상인회장은 “처음에는 입만 달싹달싹하는 상인들이 많았다”며 “그런데 자꾸 하다 보니 손님 보면 ‘어서 오십시오’가 자동으로 나오더라”고 했다.

시장 상인회는 친절, 위생·청결, 결제수단 다 받기 등 월별로 주제를 바꿔가며 캠페인을 열었다. 원산지·가격 표시제도 실시했다. 시장을 찾은 손님에게 개선할 점을 물어보고, 직접 우수점포를 뽑게 했다. 상인들끼리 상품 진열을 조금씩 양보하면서 시장통로가 4m로 넓어지자 손님들이 더 편하게 물건을 사게 됐다.

 

◇코로나 위기에도 매출 24% 상승

상인들의 노력에 주민들은 다시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하루 평균 시장 방문객 수가 2019년 3만8000명에서 지난해엔 4만 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월평균 매출은 30억5000만원에서 40억2000만원으로 24% 올랐다. 요새 시장에는 대(代)를 이어 장사하는 30·40대 상인이 늘고, 고객들도 점점 더 젊어지고 있다고 한다.

작년 초 코로나 위기가 닥치자 지역 주민들이 먼저 나서서 시장 지키기에 나섰다. 통장들이 상인들과 합심해 시장 방역 활동을 하고, 손님들을 상대로 “도깨비시장은 코로나에 안전하다”고 홍보도 했다. 박광근 단장은 “최근 20·30대 고객이 전보다 많아졌다”며 “이들을 사로잡기 위한 온라인 쇼핑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21. 1.19 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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