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 신부이신 김대건신부님에 관한 영화 "탄생"을 한번 관람해야하는데
그동안 시간이 나지않아서 24일(토) 영화관람을 하려고 "탄생"을 상영하는 극장을 찾아보니
많이 없었고 또 시간대도 맞지않았다. 다행이 수유CGV가 아침 09:00에 상영하는것을 확인하고
아침 일찍 수유CGV에 가서 "탄생" 영화를 관람했다.
아침 일찍이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라 그런지 "탄생" 영화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김대건신부님은 증조부 김진후(金震厚)가 10년 동안의 옥고 끝에 순교하자,
할아버지 김택현(金澤鉉)이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로 이사함에 따라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도 독실한 천주교신자였으며, 1839년 기해박해 때 서울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으며.
소년 김대건이 신부가 딘것은 숙명인것 같다.
1836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Maubant, P.)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
최방제(崔方濟)·최양업(崔良業)과 함께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외방전교회 동양경리부(巴里外邦傳敎會東洋經理部)로 가게 되었다.
그 곳 책임자인 신부 리부아(Libois, N.)의 배려로 마카오에서 중등 과정의 교육을 마친 뒤
다시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하였다.
그 뒤 조선교구 제3대 교구장 주교 페레올(Ferreol, J. J .J. B.)의 지시로,
동북국경을 통하는 새로운 잠입로를 개척하고자 남만주를 거쳐 두만강을 건너 함경도 땅에 잠입했으나
여의치 못하여 다시 만주로 돌아갔다. 그 동안에도 꾸준히 신학을 공부하고, 1844년에 부제(副祭)가 되었다.
그 해 말에 서북국경선을 돌파하고, 1845년 1월 10년 만에 귀국하였다.
서울에 자리잡은 뒤 박해의 타격을 받은 천주교회를 재수습하고,
다시 상해로 건너가서 완당신학교(萬堂神學校) 교회에서 주교 페레올의 집전하에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되었다.
같은 해 8월에 주교 페레올, 신부 다블뤼(Daveluy, M. N. A.)와 서울에 돌아와서 활발한 전교활동을 폈다.
1846년 5월 서양성직자 잠입해로를 개척하다가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었다.
서울로 압송된 뒤 문초를 통하여 국금(國禁)을 어기고 해외에 유학한 사실 및 천주교회의 중요한 지도자임이 밝혀졌다.
이에 정부는 그에게 염사지죄반국지율(染邪之罪反國之律)을 적용, 군문효수형(軍門梟首刑)을 선고하고
9월 16일 새남터에서 처형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다.
그의 시체는 교인들이 비밀리에 거두어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에 안장했다.
한국 천주교회의 수선탁덕(首先鐸德: 첫번째의 성직자라는 칭호)이라 불리는 김대건의 성직자로서의 활동은
1년 여의 단기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간에 한국인 성직자의 자질과 사목능력을 입증하여 조선교구의 부교구장이 되었고,
투철한 신앙과 신념으로 성직자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천주교회는 그를 성직자들의 대주보(大主保)로 삼고 있다.
1925년 로마교황 비오11세에 의해 복자로 선포되었고, 1984년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2019년 11월 유네스코는 제40차 총회에서 김대건 신부를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확정했다.
옥중에서 정부의 요청을 받아 세계지리의 개략을 편술하였고,
영국제의 세계지도를 번역, 색도화(色圖化)해서 정부에 제출하였다.
그 당시 외국어에 능통했던 김대건 신부의 능력을 아깝게 생각한 임금 헌종은 김대건 신부를 살려줄려 노력했지만
신하들의 극구 반대로 성사되지 못한다.
국가의 이익보다는 평등을 내 세우는 천주교의 교리가 호의호식하는 양반 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일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그 당시에는 자기 목숨을 내 놓으면서까지 신앙생활을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자녀가 된다는 그런 희망을 가지고 죽는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것을 보고
현재 나 자신의 안일한 신앙생활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12.24(토) 오후에는 점심을 먹은 뒤 4호선 이촌역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일반 전실물을 관람했다.
구석기시대에서 부터 삼국시대까지~~
그런데 이런 관람도 젊었을때 보아야 할것 같다.
박물관 자체가 굉장히 넓고 또 보아야 할 공간도 많아서 오랫동안 서서 그리고 이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것을 느꼈다.
우측 전시관에 들어가서 구석기시대~삼국시대까지 유물들을 관람하고 왔다.
한번에 전부 관람하기에는 좀 피곤할것 같아서~~
휴대폰으로 찍었는데 이브라 그런지 이런 디자인으로 사진이 나온다.
백제시대 유물
신라시대 유물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경천사 10층 석탑
다 보고 나와서 남산을 바라보고~~
12.25(일) 아침 일찍 성당에 가서 성탄 대축일 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고는
약수역으로 가서 약수역 6번출구 - 금호산 - 매봉산 - 남산 - 4호선 회현역까지 약 8km 정도를 걸었다.
서울시내 낮은 산들은 거의 다 가보았는데 성동구에 있는 응봉산과 중구 금호산, 매봉산을 가보지 못했는데
금호산과 매봉산을 가보기로 했다.
나는 원래 호기심이 많아서 가보지 않은 곳을 자주 다니려 노력한다.
약수역 번출구에서 나와서 앞에 보이는 금호산을 향해 경사진 길을 올라가다보니
금호산 가는 이정표등이 있었다. 금호산 정상에 가니 등산로에 눈이 쌓여있어서 조심해서 걸어야 했다.
항상 느끼는것이지만 서울 도심에 높고 낮은 이런 산들이 있다는것은 서울의 매력인것 같다.
올라가서 보니 서울의 숲-응봉산-금호산-매봉산-남산까지를 "서울 숲-남산길"이라 부르고
또 이정표가 잘 되어 있었다.
남산에 오르면서 보니 외국인분들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가족단위, 친구들, 연인들끼리 남산을 찾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즐겁게 거니는 모습을 보니 보기에 참 좋더라~~
▲ 약수역 - 금호산
약수역 6번출구로 나와서~~ 저 앞에 약수역 6번 출구가 보인다
6번 출구로 나와서 직진하다가 도로를 횡단하여 산을 목표로 걸어간다
조금 가다보니 금호산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앞에 보이는 계단으로 오른다~~
계단을 올라가니 등산로에 눈이 조금 쌓여있고 어떤 곳은 얼은 곳도 있어서 조심해서 걷는다
▲ 금호산 - 매봉산
금호산 정상에서~~
금호산 정상에서~~
금호산에서 하산하여 매봉산방향으로 걸어간다
우측 길로~~ 우리 친구가 사는 남산타운^
나중에 우리 친구가 자기한테 보고도 없이 자기 지역에 왔다고 투덜투덜~~
서울 동호초등학교 정문앞을 지나간다
정문 지나자마자 좌측 계단으로 올라간다
▲ 매봉산 - 국립극장
테니스장이 등산로 좌측에 있었다
아래 도로까지 내려가서 인도로 국립극장까지 걸어간다
▲ 국립극장 - 남산 - 힐튼호텔 앞
국깁극장이 보인다~~
남산을 향해서~~
남산타워가 보인다
남산 정상 팔각정~~ 학생들이 크리스마스 송을 부른다. 저런 모습이 이쁘다
하산하면서 봉화대를~~
힐튼호텔방향으로 하산하는데 계단에 눈은 다 녹았다.
앞에 힐튼 호텔이 보인다. 이곳에서 회현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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